주식 시장에 갓 입문한 초보 투자자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조언이 있다. 바로 “대형 우량주를 사서 묻어두라”는 말이다. 장기 투자는 과연 무조건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불패의 공식일까? 지난 10년의 데이터와 최근 전해진 반도체 업계의 초대형 호재를 종합해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묻어두기’식 투자는 위험할 수 있지만, 산업의 트렌드 변화를 포착한 기업에게는 확실한 기회가 온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고 있다.
엇갈린 10년의 명암… IT는 날았고 전통 제조업은 울었다
신한금융투자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한·미 증시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단순히 대형주라고 해서 모두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상위 10개 중 3개 종목이, 국내에서는 절반에 달하는 5개 종목의 주가가 10년 전보다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특히 뉴욕 증시와 한국 증시를 관통한 공통적인 키워드는 ‘IT 기술주의 약진’과 ‘전통 제조업의 부진’이었다. 10년 전 시총 1위였던 애플은 600%가 넘는 경이적인 상승률을 기록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800% 이상 폭등하며 시장을 주도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타며 강세를 보였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속된 저금리와 저물가 기조가 미래 가치를 선반영하는 기술주들에게 유리한 자금 조달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때 시장을 호령했던 전통 산업재 기업들은 쓴잔을 마셨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은 주가가 반토막 났고, 국내 증시를 이끌었던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의 대표 주자인 현대차 역시 지난 10년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포스코홀딩스, 현대모비스, 삼성생명 등 쟁쟁한 기업들이 시총 순위에서 밀려나거나 주가 하락을 맛봐야 했다.
“고인 물은 썩는다”… 새로운 성장 동력의 부재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형주의 역주행’ 원인을 산업 트렌드의 변화와 혁신의 부재에서 찾는다. 2010년대 초반 상승장을 주도했던 종목이라도,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NH투자증권 편득현 전문위원은 “설립 후 30년 이상 지난 기업들은 비즈니스 성숙기를 지났기 때문에, 신사업 진출이나 적극적인 M&A 없이는 주가 부양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에너지 및 자동차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으며 잠시 숨통이 트였지만, 이는 거시 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결국 장기적인 우상향을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가 체질을 개선하고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실제로 삼성전자 주가가 주춤할 때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기존 메모리 반도체 외에 파운드리나 대형 M&A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엔비디아발 훈풍, 반도체 투톱에 꽂힌 ‘조 단위’ 잭팟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증시의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새로운 모멘텀이 포착됐다. 과거 10년의 데이터가 보여준 ‘혁신 없는 정체’의 우려를 씻어낼 만한 대형 호재가 터진 것이다. 최근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인 ‘H200’에 대해 중국 수출을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선다. 엔비디아의 H200 칩 판매가 중국 시장으로 확대됨에 따라, 여기에 필수적으로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수조 원(수십억 달러) 규모의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빅 사이클’이 열린 셈이다.
결국 주식 시장의 역사는 반복된다. 무작정 대형주를 묻어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변화하는 산업 지형도 속에서 어떤 기업이 기회를 잡느냐가 중요하다. 지난 10년이 모바일과 플랫폼의 시대였다면,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AI 반도체 기술력을 선점한 기업들이 주도할 것임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번 엔비디아발 호재를 발판 삼아 다시 한번 퀀텀 점프를 이뤄낼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