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시한폭탄: 킬라우에아 관측 난항이 소환한 1천 년 전 백두산 폭발과 발해의 운명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의 정상부 분화가 일시적으로 멈춰 섰다. 다가오는 4월 3일에서 13일 사이에 44번째 용암 분출이 시작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현대 과학의 정점인 화산관측소조차 정확한 예보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최근 약 2주간 이어진 악천후와 정전 사태로 인해 경사계를 비롯한 주요 정상부 관측 장비의 데이터 송신이 끊겼기 때문이다. 지진 미동은 전반적으로 잦아들었으나, 섭씨 온도의 급상승과 맞물려 5~10분 간격으로 가스 분출과 연관된 진동이 여전히 포착되고 있다. 2024년 12월부터 이어져 온 이번 분화는 지난 3월 10일 주변 지역으로 화산재를 날려 보낸 43번째 분출을 통해 그 파괴력을 입증한 바 있다. 이처럼 첨단 장비로 무장한 오늘날에도 대자연의 변수 앞에서는 화산의 움직임을 완벽히 통제하고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천 년 전, 아이슬란드 화산 1천 개 위력의 대재앙 현대 관측 기술의 한계는 자연스레 인류가 기록하지 못한 과거의 거대한 재앙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약 1천 년 전 발생했던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이 그 대표적인 맹위의 흔적이다. 2010년 유럽의 항공망을 완전히 마비시켰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에너지의 무려 1천 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뿜어낸 이 사건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화산 활동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당시 분출된 화산재의 양은 한반도 남쪽 전역을 1m 높이로 뒤덮을 수 있는 100㎦ 규모였다. 백두산 지하 30~40㎞의 지각 경계와 10~15㎞ 깊이에 존재하는 두 개의 마그마 방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다가, 점성과 유동성이 떨어지는 순간 억눌렸던 분노를 터뜨리듯 격렬하게 폭발한 결과였다.

흰 산의 탄생과 맹렬한 화쇄류의 공포 흥미로운 대목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백두산(白頭山)’이라는 이름의 기원이다. 샴페인 뚜껑이 열리듯 폭발이 시작되면서 거품처럼 끓어오르던 마그마는 물에 뜰 정도로 가벼운 부석이 되어 산 일대를 하얗게 뒤덮었다. 문헌상 백두산이라는 명칭이 991년에 처음 등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폭발 직후 산 정상이 갑작스럽게 하얀 사막처럼 변해버린 사건이 개명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하얗게 변한 산의 이면에는 끔찍한 재앙이 도사리고 있었다. 직경 4㎞에 달하는 분연주가 성층권까지 솟구쳤다 무너져 내리며 화산 가스와 돌조각이 뒤섞인 거대한 화쇄류를 만들어냈다. 시속 100㎞ 이상의 맹렬한 속도로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린 이 고온의 흐름은 반경 50㎞ 이내의 모든 생명체를 800도의 열기로 태워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뜨거운 분출물에 녹아내린 눈이 진흙과 뒤엉켜 대홍수를 일으키며 백두산 서쪽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해동성국, 화산이 삼켰을까 이러한 압도적인 재해의 흔적은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던 강대국 발해의 미스터리한 몰락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15대 229년을 이어온 발해는 거란의 침공에 이렇다 할 저항조차 해보지 못한 채 수도 포위 닷새 만에 허무하게 항복했다. 1990년대 초반 일본 과학계가 홋카이도 등지에서 백두산 화산재 지층을 발견하면서부터, 이 대폭발이 발해 멸망의 실질적인 원흉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전쟁의 승패와 무관하게 멸망 이전부터 수많은 발해인들이 고향을 등지는 탈출 행렬이 이어졌고, 심지어 승전국인 거란마저도 수도 함락 직후 비옥했던 발해 땅을 서둘러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해인들이 떠나고 버려진 마을들의 위치를 지도상에 표시해 보면 백두산 화산 분출물 및 진흙탕 홍수의 피해 반경과 정확히 일치한다. 멸망 후 그 황폐해진 땅에 금나라가 새로이 들어서기까지 무려 200년이라는 공백기가 존재했다는 사실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화산재로 덮인 죽음의 땅이 식물이 다시 자라날 수 있는 생명의 토양으로 회복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태학적 시간이 바로 200년이기 때문이다.